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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 변의 승산마을과 GS 家의 음·양택 明堂 發福...이종천의 풍수지리 이야기   5
진주 남강 변의 승산마을과 GS 家의 음·양택 明堂 發福...이종천의 풍수지리 이야기   5
  • 이종천 실용풍수학회 회장
  • 승인 2024.03.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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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 바위 전설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
허준묘

 

진주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지수 IC로 나오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마을로 알려진 승산리가 나온다. 능성구씨와 김해 허씨 집성촌인 이곳에 가면 최소한 세 번은 놀라게 된다. 첫째, 이 마을에서 천석꾼 이상의 부자 열여섯 명이 매년 3만6000석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둘째, 이 마을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GS 허만정 등 ‘솥 바위 전설’ 주인공들이 다녔다. 셋째는 80년대 국내 100대 재벌 중 30명이 지수초등학교 출신이고, 전경련 회장 두 분이 배출됐다고 하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재작년 가을 실용풍수학회 회원 30여 명과 이곳을 찾았을 때 만난 방문객들은 “부자 기운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생각을 구현하는 시대에 위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주민들과 방문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과 학교가 풍수 명당에 위치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國富 3인 탄생의 솥 바위 전설’과 승산마을을 설명하려면 풍수 이론 외 다른 방법이 없다.

승산마을의 역사

지수(智水) 면지(面紙)에 승산마을은 600여 년 전 김해 허씨(金海許氏)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허씨 집성촌을 만들었다. 300년 뒤에는 허씨 가문에서 능성 구씨(綾城具氏)를 사위로 맞으면서 허 씨와 구 씨가 조화를 이루며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허씨 집안은 근면과 절약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인근의 고성, 의령, 함안, 산청 등에 많은 농토를 확보해 허준(GS 창업자 허만정 부친), 허만진 등 만석꾼 2명과 5천석 꾼 2명, 천석꾼 부자 12명이 살았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으로 소작농에 농지가 불하되는 바람에 만석꾼, 천석꾼 신화는 막을 내렸다. 그 후 70년대 산업화 시대가 열리자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진출하면서 지금은 100여 채만 남아있다. 그중 일부는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상당수는 거주하지 않고 관리만 하고 있다고 한다.


승산마을은?

승산마을은 방어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마을 뒤편을 병풍처럼 감싸안은 보양산 아래에 재벌들의 생가가 줄지어 있고, 마을 앞에는 실개천이 흐른다. 2022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지수초등학교(현재 폐교) 교정을 둘러보고 도로 건너편 효주공원(허만정 기념 공원)을 지나 실개천 다리를 건너면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신식 학교이던 지수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유학 와서 지냈던 누님(매형 허순구, 진주 최초로 백화점 운영) 집의 안내 표시판이 보인다. 담 옆길을 더 걷다 보면 허만정의 부친이자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가인 허준 선생의 생가가 보이고 그 뒤엔 허준이 말년을 보내던 기신독곡(基愼)獨谷)이 있다. 근처에 김해 허씨 대종중 재실 ‘연정’과 허구연 야구 해설가의 생가도 있다. 마을 위쪽에는 임진왜란 때 700명의 의병을 모아 진주성 1차 전투에 참전하고 공을 세운 관란(觀瀾) 허국주(許國柱) 선생이 노년을 보내던 관란정(觀瀾亭)도 있다.
승산마을은 LG 창업주 구인회, LIG 구자원, 쿠쿠전자 구자신, GS 허준구와 아들 허창수, 알토그룹 허승효, 삼양통상 허정구, LG 구자경 회장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인 생가 12곳이 남아있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 대기업과 중견그룹 회장, 상장기업 대표 등 30여 명의 경영인이 배출됐다. 특히 구자경, 허창수 회장 등 두 명의 전경련 회장을 배출된 곳은 이 마을이 유일하다.


지신정(止愼亭) 허준(許浚) 

승산마을의 대표 격 인물인 허준 선생(1884~1932)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42세(1886년) 때 과거에 급제하고 59세(1903년)에 비서원 승이 됐으나 조선이 패망하자 낙향해 근검절약으로 부(富)를 이룬 분이다. 그는 만석꾼이 되었어도 멈추고 삼가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 호를 지신정(止愼亭)으로 정했다. 경주 최씨가 경주지역의 참다운 부자(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면 허준, 허만정 부자(父子)는 진주 지역의 참 부자(富者)였다. 그는 남이 볼 때는 짚신을 신고 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들고 다닐 정도로 근검생활을 하면서도 홍수로 인근 주민들이 호별세(戶別稅)를 못 내게 되면 대신 내 주기도 했다. 그 아들 효주(驍州) 허만정(許萬正)은 의령 출신 안희재, 경주 갑부 최준 등과 거액을 출자해 독립운동의 자금줄이 된 백산상회를 세우기도 했다.
지신정은 77세 때 자기 재산이 자식들에게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을 염려해 국가와 이웃, 친족, 조상으로 네 등분해 배분한다는 내용을 김해 허씨의 의장 비에 기록, 자식들이 지키도록 당부하고 있다. 특히 그는 생전에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길은 학교를 설립해 문맹을 퇴치하는 방법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수초등학교 부지를 제공했다. 자식 허만정을 통해 진주여고 전신인 일신 학당을 세우는데 논밭 3만8000평을 기증했다.


산포수회(山抱水回)의 마을

승산마을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풍수지리 명당 터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자가 태어났음을 자랑하고 있다. 풍수가들은 “승산마을은 산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물이 바로 빠지지 않고 관쇄가 잘 돼있는 지세이자 부자의 기운을 타고난 땅이며 지리산 영봉에서 남강, 낙동강 남쪽을 따라 이어지는 방어산과 삼방산으로 맥이 연결돼 있고, 두 산 사이로 흐르는 지수천의 물이 뒷골목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부자 마을이 됐다”고 했으며 지수(智水) 면지(面紙)에 “지수면 승산리는 산세가 부자 터의 조건을 갖추었다. 방어산(防禦山)으로 내려온 맥이 마을 뒷산이 되는 회룡고조형(回龍高顧祖形))이다. 동네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안산은 평평하게 밥상처럼 생겼다. 동네 앞에 하늘에서 차려준 밥상이 있는 셈이다.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도 2겹이나 된다. 밖에서 동네를 감싸며 흐르는 물은 바로 못 빠져나가게 玉峯(마을의 청룡 격) 이라 불리는 떡 바위가 수구를 막아주어 동네에 재물이 모인다고 본다”고 기술돼 있다.


필자가 판단하는 승산마을의 명당지세

위 풍수적 판단도 일리가 있지만,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가 빠졌다. 즉, 선사(先師)들은 “산을 보기 전에 물을 먼저 보라”고 했고, “큰물과 작은 물이 있으면 큰물을 먼저 평가하라”고 했다. 형기풍수(形氣風水)의 교과서인 ‘인자수지’에서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 물이 깊고 천천히 흐르는 곳에서는 부자가 많이 난다”라고 했듯이 승산마을에 대한 풍수지리적 판단은 마을로 한정하지 말고 지수면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남강과 마을을 지켜주는 진산(鎭山 =주산·방어산)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지수면의 수(水)를 보자. 함양의 남덕유산, 백운산,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남강 물줄기는 진양호에서 모였다가 진주 시내를 관통하고 금산면, 대곡면, 지수면, 의령군, 함안군을 지나 창녕군 두물머리에서 낙동강과 합수한다. 그 남강이 서에서 동으로 천천히 흐르다가 지수 목에서 함안군 악양루 앞까지 물길이 수십 번 꺾이고 바뀌면서 逆水 하니 강물의 흐름이 멈추듯 느려지고 바람도 잔잔해 선조들은 지수면 인근에 네 곳의 나루터를 조성, 지수면과 함안군 쪽의 풍부한 물산을 배에 실어 날랐는데, 이런 지세에 대명당이 있다.


용봉 나루터
1926년 발행의 조선지형도 진주 편(진양지 1632)에 “지수면 용봉리 뱃가 마을에 있는 나루터는 지수면 용봉마을과 의령군 화정면 상아리를 잇는 나루터로서 삼가, 의령읍으로 가는 삼거리이고, 진주 동쪽 55리에 있다”고 했다.


용당 나루터
진양지에 “용당 나루터는 대곡면 대곡리, 마진리와 지수면 압사리, 금곡리를 잇는 남강의 옛 나루터로서 두 개의 바위가 양안에서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석문(石門)과 같다”고 기술돼 있는데, 풍수에서는 이런 지세를 한문(悍門: 사나운 병사가 지키는 문)이라 하며 한문이 있으면 그 안에 귀한 명당이 있다.


안계 나루터
지수면 용봉리 안계마을에 있는데, 기러기가 많이 내려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계마을과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를 잇는 뱃나루였는데, 남강의 뱃길을 이용해 진주와 의령을 연결하는 ‘나루터 시장’도 있었지만, 1970년 남강댐이 건설되자 강물이 줄어들고 의령과 지수 쪽에 육로가 발달 되면서 쇠퇴했다.


염창 나루터
염창 나루터는 지수면 청담리 청담마을 앞 남강 변에 자리해 청담리와 의령군 화양리를 이어주던 나루터였다(이상 지수 면지에 수록된 진양지 1632). 이렇듯 지수 목 하류의 용봉 나루터에서 청담리 앞 염창 나루까지 4곳의 나루터가 있었던 이유는 운반할 물산이 풍부했고, 남강 양안(兩岸)에 역수 하는 산과 바위가 많아 물길이 굴곡지고 깊고, 고여 있는 듯 천천히 흘러서 노 젓기에 수월하며 이런 지세는 기압도 높고 건강하며 재물에 이로운 명당 터가 많다.


기업의 산실(産室) 지수초등학교

왜 지수초등학교 출신 기업가들이 출세했는가? 해석이 쉽지 않지만, 정통풍수지리에 답이 있다. 먼저 마을의 진산(鎭山) 방어산과 승산리의 지세를 본다. 방어산은 낙남정맥의 끝자락에 있어 용맥(龍脈)의 발원지인 태조산도 멀고 용세(龍勢)도 강해 엄청난 기운이 모이는 곳이다. 즉,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에 걸쳐있는 이 산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원한 낙남정맥이 삼신봉을 거쳐 창원 무학산, 함안 여항산(743m), 마산령(661m), 오봉산(524m), 괘방산(456m)을 지나 방어산(530m) 끝자락의 승산마을을 회룡고조형으로 포근히 감싸안아 명당 기운을 생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허준 생가에서 방어산을 보면 개면하고, 균형 잡힌 토형산이 있는데, 풍수에서는 토형산이 보이는 곳에 거부(巨富)가 난다고 한다. 특히 방어산자락에 떨어진 빗물이 지수초등학교 쪽으로 모이는 창판수(倉板水: 재물)이고,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형태의 보양산이 안산으로 있어 수(水)와 명당 기운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 학교 출신 사업가들의 출세와 관련이 있으며 학교 교정을 내려다보는 개지산(開地山: 방어산 끝자락의 土型山)의 응기(應氣: 天氣)를 듬뿍받고 자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허준 묘의 명당 발복

GS그룹 창업자 격인 효주 허만정의 부친이자 허창수 GS 회장의 증조부 허준 묘는 진주시 진성면 천곡리 산 7에 있다. 묘의 주산을 전체적으로 보면 거부가 나온다는 토형체로서 균형 잡히고, 개면한 중심룡에서 결혈(結穴) 했는데, 현무봉에서 내룡을 살펴보면 도시개발로 인해 형세판단이 쉽지 않다. 묘는 3기인데 가운데 허준 선생 묘가 정혈에 안장돼 있다. 좌우에 부인 재령이씨와 함안 조씨가 나란히 묻혀있다. 특히 허준 묘는 힘 있는 용호가 두 다리를 벌린 것과 같은 겸형혈(鉗形穴)인데, 내청룡은 주혈을 힘 있게 감쌌으며 수구는 좁다. 특히 외청룡 두 줄기가 멀리서 크게 환포하는 형세는 마치 병사들이 주군을 이중 삼중으로 호위하는 모양인데, 이런 지세는 다자다손 하고 후손이 크게 발복할 것으로 해석된다. 수(水)는 남강물을 고스란히 받아먹는 창판수(倉板水)의 형국이고, 명당(들판)은 넓고 평탄 방정해 속 발복지 이자 재벌의 탄생을 예고하는 대지(大地)로서 손색이 없다. 필자는 후손들의 활약상을 통해 허준 묘가 ‘부(富)와 多子孫의 발복지’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1) 효주(驍州) 허만정(許萬正(1897~1952) 허준의 차남으로서 LG그룹 공동 창업자이며 GS 그룹의 뿌리이자 독립운동가, 기업가이다. 자식은 정구, 준구, 신구, 완구, 승조, 학구, 승효, 승표 등 8형제가 있다. 손자 12명 중 허창수는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2) 허정구(1911~1999) 허만정의 장남 정구는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이병철, 조홍제 회장과 함께 초기 삼성을 이끈 재계 1세대다. 제일제당 전무, 삼성물산 사장을 역임하고 1961년 독자적으로 삼양통상을 설립, 운영했으며 3남 1녀를 뒀다.
3) 허학구 허만정의 차남 허학구는 메이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대에 부산에서 럭키전자의 전무, 새로닉스 회장을 역임했다.
4) 허준구(1923~2002) 구인회와 LG그룹을 공동 창업한 허만정의 3남이다. 능성구씨, 김해 허씨 사돈가 중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경영자로 3대에 걸쳐 55년간 동업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LG전자, LG전선 대표이사를 거쳐 84년 LG전선 회장 겸 LG그룹 총괄부회장을 지냈다. 1995년 구자경 회장과 동반 사퇴했다.
5) 허신구(1929~) 허만정의 4남. 부산대를 졸업하고 조선 통운, 럭희 화학에서 근무하면서 그룹 부회장, 럭키 석유화학 부회장을 역임했다.
6) 허완구(1936~) 허만정의 5남 허완구는 69년 대왕 육운을 설립하고 85년 ㈜승산으로 사명을 변경, 2003년 승산레저클럽을 설립, 레저산업에 진출. 한국씨름협회 회장.
7) 허승효(1944~) 아셈타워 정상 회의실, 인터콘티넨탈호텔, 서울역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GS타워 등 조명시설을 설계하고 제작한 조명전문업체 ‘알토’의 회장으로서 특히 숭례문 보신각, 비원, 동십자각 등 문화재의 조명도 알토의 작품이다.
8) 허승표(1946~) 연세대 졸업 후 서울은행에 입사해 은행원 생활을 하다가 1978년 ㈜승산의 부사장 취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기술 위원장을 역임했다.
9) 허승조(1950~) 허만정의 8남이다. 서울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졸, 럭키금성상사, 반도패션, LG상사 마트사업부문 부사장, GS 리테일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0) 허남각(1938~) 삼양통상 허정구의 장남, 서울대 졸,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 삼양통상 대표이사, 한국나이키 회장, 91년 삼양통상 회장을 역임했다.
11) 허동수(1943~) 허정구의 차남, 연세대 화공학과 졸업, 미 위스콘신대학교 석. 박사. 대한석유협회 회장, GS칼텍스 대표이사, 금탑 산업훈장(2000년), 200억 불 수출탑, 2012년 매경이코노미에서 선정한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12) 허광수(1946~) 허정구의 3남으로서 경기고와 고려대,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삼양통상 LA 지사장,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을 역임했다.
13) 허창수(1948~) 허만정의 3남 허준구(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LG전선과 LG건설,  GS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4) 허진수(1953~) LG 에너지 대표이사 사장, GS 칼텍스 사장,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15) 허명수((1955~) 허준구의 4남으로 엘지전자 상무, GS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6) 허태수(1957~) 허준구의 5남, 중앙고와 고려대, 조지워싱턴대 경영학석사, LG투자증권 국제금융부문 이사대우, LG홈쇼핑 전략기획 부문 상무,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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