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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애 화가
강승애 화가
  • 월간리치
  • 승인 2014.08.08 09:18
  • 호수 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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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미 충만 강승애 작가 반추상 이미지마다 은총 가득

서정성 깊은 색채언어로 반추상 이미지를 형상해온 강승애 작가의 작품세계가 근래 들어 훨씬 원숙미를 더하고 있다. 병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생명에 깃든 신의 은총과 축복을 절감한 뒤 ‘비움’으로써 평화화 사랑, 희망이 더 큰 충만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리라. 어떤 테마를 선택하든 풍부한 상징성을 바탕 삼아 온화하고 운치 있는 색채를 통해서 서두름 없이 넉넉히 풀어내는 화풍으로 이름만 강승애 작가.자신만의 조형세계 심화과정을 16번에 걸친 개인전에서 유감 없이 입증한 바 있는데 올해 3월 17번 째 전시회는 더욱 특별했다. 작품들의 판매대금 전액을 샘물호스피스에 작품 구입자의 명의로 기부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비우는것이 채우는 것이요, 베품이 더 많은 행복으로 남았다는 말을하며 이번 17번째 개인전에서 경제적인 득은 하나도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많은것을 얻었다는 강작가.전체적 흐름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반추상 이미지에 많은 것을 함축한 가운데 맑고 깊은 서정성 짙은 색채언어로 공감과 상응의 감동을 터뜨린다. 깊이와 원숙함 훨씬 더해진 사연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교수) 평론가는 “근작에 와서 화면의 중후함과 깊이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판을 매겼다. 불시에 찾아온 병마로 입원한 병석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마저 작품세계에 큰 자산으로 삼았던 사실을 서 평론가는 높이 산다. 막상 환자가 되어보니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도 비움의 의미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생명이 이처럼 귀하며 혹시 필요 이상의 것에 집착한 것은 없는지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퇴원 후 강승애 작가는 종래의 세계를 미련 없이 비워내는 대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작품세계를 펼친 덕분이라고 한다. 평생 작품을 하면서 밀도높은 긴장감을 계속적으로 유지해온 작가로서의 면면이 잘 알려져 있는데 과감히 과거를 떨치고 새 몸에 새 옷을 입히듯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새 지평을 열어가자는 새 뜻은 곧 이어 깊이와 원숙함이 훨씬 더해 진 작품세계로 올라 섰다고.두터운 질료감 오묘한 색채감서 평론가는 “기존의 캔버스에 물감이 더해짐으로써 두께에 의한 질료감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색이 겹쳐지면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었다. ‘비움의 충만’이랄까, 비움으로써 채움을 얻는 역설의 원리를 체험하게 된 것”이라고 극찬했다. 작품을 풀어가는 수법이나 전체 기조는 이전과 비슷해서 작가는 여전히 씨앗이나 새 싹, 풀잎, 줄기,화분, 빛줄기, 둥지 등의 이미지를 애용한다. 교회나 악보, 의자 등도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으나 대체로 식물이나 자연 이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표면적으로는 정물화나 실내화인데 꼼꼼히 살펴보면 풍부한 암시성을 내포하는 게 특징이라면서 서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값을 매겼다.“강 작가가 정물화(靜物畵)나 실내화(室內畵)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암시성은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의미담지체(意味擔持體)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한편으로 강 작가의 작품은 신앙심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성의 샘에서 흘러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종종 발견되는 씨앗과 화분은 맘속에 주님을 모시고 살자는 심령의 고백이자 증거이며 새 싹은 믿음이 커가는 것을, 빛줄기는 하늘의 은총을,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각각 의미한다.생명의 축복과 은총 해맑게 형상화구체적 작품을 놓고 서 평론가는 “붉은 색이 감도는 (2013)은 비록 꽃의 영화는 잠시 뿐일지라도 신과의 온전한 연합속에 머문다면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2013)은 교회 옆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통해 충만한 생명의 축복을, 빛을 환하게 머금고 있는 (2011)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를, 여러 이미지가 중첩된 (2013)는 여러 지체가 연합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가까이로는 가시면류관과 악보가 있고, 멀리로는 십자가가 보이는 (2013)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으며, 잔잔한 녹색이 물결치는 (2013)는 마음이 상하고 깨어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각각 보낸다. 각 작품이 담고 있는 장면은 상이하지만 전체적으로 일상의 신앙생활 속에서 느낀 점들을 그림으로 차근차근 묘출하고 있다”고 했다. 무거워지기 십상인 종교적 충만함이 한 점 수채화처럼 해맑고 친근하게 펼치는 것은 그만의 장점이다.신의 맥박과 공명, 안식과 위로서 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눈길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작가가 신령한 빛을 제시하고 자신을 자라나는 나무로 여기는 것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했다. 작가의 생각이나 주관이 아니라 창조주의 손길이 자신에게 어떻게 감지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가 의 첫 머리에서 언급한, “주님은 광대하시니 크게 찬송을 받으소서”란 신실한 고백이 작품에 그대로 흘러나오는 듯하다는 것. 새가 노래하고, 물결이 술렁이며 폭포도 합창하듯이 기독교인이 신에게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강승애 작가는 오감과 별개로 ‘거룩한 감각’(Divine sense)을 제시한다는 점이 이채롭다는 지적을 받는다. ‘거룩한 감각’은 우리의 호흡과 마찬가지로 몸으로 표현되고 삶의 현장에서 실연된다. 이런 뜻에서 강승애작가는 온전한 본성의 능력을 회복하여 신의 맥박에 공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 감각을 타고 전해지는 천상의 언어는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곤고(困苦)한 사람들을 위로해주리라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도움이 절실한 환우들을 작품전시로 돕겠다고 마련한 17번째 개인전은 그래서 진한 감동과 크고 긴 긴울림을 이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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