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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일러주는 말들 스밀듯 울창한 감성의 충족
숲이 일러주는 말들 스밀듯 울창한 감성의 충족
  • 월간리치
  • 승인 2015.01.12 11:18
  • 호수 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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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깊이깊이 스며든 채로 보고 느끼고 명상하는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 “모든 것이 거기 다 있다”는 깨달음이 화폭에 차올랐다. 오고 감 천지간의 소통, 소소한 것들이 응축되어 이루는 숲 속 생태와 이야기가 감각적 패턴으로 형상화된다. 누구나 저절로 아름다운 장면 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리치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자

  “깊은 자연이다. 도로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안으로 들어와 안착된 이 집은 수려한 자연의 품안에 고즈넉이 엎드려있다. 울창한 숲과 높이 솟은 나무 작은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달려 들린다. 서늘한 기운에 청량함이 더한다. 적막함도 따라 붙는다. 주변을 둘러싼 큰 나무들을 고스란히 살린 체 그 사이에 조심스레 위치한 집·작업실에서 작가는 숲을 그린다. 이 집 주인의 마음이 읽히는 건축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교수)
박 평론가는 자연과 공생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생태학적 배려 안에서 움튼 것이라고 봤다. 옛 선인들의 건축과 조경의 지혜와 맞닿아있다. 자연 내부에 안락한 둥지처럼 이루어진 집·작업실에서 작가의 그림을 보았는 거기 밖의 자연이 들어와 앉았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농밀한 자연체득 차곡차곡

환경결정론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이곳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면서부터 자연스레 그림 역시 그 자연을 닮아간다고 한다. 이전 작품도 식물을 모티브로 해서 그 형상을 도상화시킨 다분히 그래픽적이고 감각적인 구성 아래 패턴화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작가에게 그림의 항구적 소재는 늘 자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자연이란 동시에 우리와 동일한 생명체이기도 해서 결국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이 작가의 작업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관심이 아예 깊은 자연 속으로 이주하면서부터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그러나 자연과 맞닿아있다고 해서 그 자연이 온전히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의 일정한 시간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흐른 후 작가는 비로소 지금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근작은 이전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자연풍경이자 밀도 있는 자연체득이 김처럼 서려있다. 그것은 그 자연과 함께 살아온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다. 

 
행위로 직조한 상상력의 미학

자연을 목적의식적으로 그린다든가 자연이미지를 형상화해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그 자연과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길어 올려 진 편린을 도상화 시키는 그림이다. 하루하루 자연과 함께 보낸 생활을 그림일기처럼 그려 보인다. 자연과 함께 몽상한 것들을 이미지화했다. 서술성이 강하고 그 이야기를 함축한 하나의 장면을 결정적으로 안기고 있다. 그래서 다분히 영상적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눈앞에서 만나고 있는 듯 하다. 느릿하고 몽롱하면서 감각적이다.   
세속으로부터 벗어난 산사와 흡사한 이 공간은 나무와 풀과 새, 물과 바위 그리고 이런저런 동물들과의 여유로운 조우로 채워진다. 햇살과 바람, 비와 눈이 그 위로 어지러이 교차하고 잦아들었다 스러졌다를 반복할 것이다. 작가는 그 모습을 눈으로, 마음으로 흡입해서 이를 단촐하고 명징한 시각적 언어로 번안했다. 작가란 자신의 몸과 감각으로 받아들인 세계의 정보를 자기식의 언어로 코드화 하는 이다. 그는 물질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이다. 따라서 그림 그리는 일은 진정 살아있는 노동이다. 그것은 작가만의 특이한 형상이나 오브제를 발명하는 일이다. 언어적 표현이고 여러 가지 기호를 발명하는 일과 동일하다. 아름다움을 발명하는 일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이루어진 상상력”(안또니오 네그리)을 말한다.


친숙한 스토리가 길어올린 충족감

이처럼 김호순의 그림은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만난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녀는 “사람이 모르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숲은 다 안다. 자연 안에 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에는 숲이 그려져 있다. 들어와 있다. 그 숲은 그려진 숲, 이 작가만의 언어로 기호화된 숲이다. 화면 전면에 숲이 나무가 울울하다. 단색으로 칠해진 그 숲은 싱싱하고 청명한 색채로 가득해 명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숲을 대면하고 있는 주체의 마음을 그린 자화상 같다. 결국 작가 자신의 마음을 자연 풍경을 빌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낭만적인 자연의 상이 서정적으로 안착되어 있는데 사실적인 구상화도 아니고 추상화도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단순화하고 압축시켜 도상화 시켜서 흡사 일러스트레이션과도 같다. 실루엣으로만 그려진 그림 혹은 그림자로 채워진 내부를 보는 느낌도 든다. 결국 작가만의 기호화된 자연일 것이다. 
작가는 자연과 독대하고 있는 그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본 곳 느낀 것 자연이 일러주었던 말들을 화면에 올렸다. 군더더기 없이 몇 가지 이미지들만이 적조하게 배치되어 있다. 자연은 그렇게 차분하고 모든 일렁이는 것들을 죄다 잠잠하게 가라앉혀 주었나 보다. 그림이 더없이 서정적이고 조용하다. 단색의 색채들이 조밀하고 힘이 있다.
숲으로만 가득하고 더러 달이 떠있고 새와 나무와 벤치가 놓여진 그런 풍경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모종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한 순간의 상황성이 응고되어 펼쳐져있어서 흡사 그림책,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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