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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영 회화의 ‘본성’ 탐구 아이를 거울 삼은 현실·삶
신소영 회화의 ‘본성’ 탐구 아이를 거울 삼은 현실·삶
  • 월간리치
  • 승인 2015.02.10 10:59
  • 호수 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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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도……’라는 독백을 머금게 하는 신소영 작가. 아이와 다른 아이, 아이가 관계를 맺는 숱한 존재들이 본원적 심상과 정서를 촉발시키며 묻고 파고들며 매듭지어 준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넘나들며 응축한 아이(들)가 주인공인 세상은 어른들이 못다 푼 숙제 혹은 삶의 전 과정에서 교차하고 충돌했던 희노애락 긴 사연들이 농축돼 있다. 리치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몹시 그리운 詩語 유년의 부재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경유해왔다. 그래서 어른들 속엔 여전히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부재하는(부재로써 존재하는) 만큼, 어른이 어린아이를 되불러온다는 것은 곧 부재하는 존재와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 존재방식이 부재인 만큼 그리움을 되불러오는 시제 역시 과거시제를 취한다(모든 그리움은 부재에 대한 그리움이며, 과거를 향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엔 <그 순간>, <그때서야>, <그때의 너는>, <그러했던 날>, <잊어가는, 잊혀지는> 등의 과거를 암시하는 제목이 많다.” (미술평론가 고충환)
어린아이가 주인공이고 아이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놓은 세상이 때론 <어린왕자>처럼 이상적인가 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적이다가도 때론 <양철북>에 등장하는 오스카처럼 시니컬할 때도 있다고 고충환 평론가는 전한다.  

 
성 나이 시대 초월한 삶의 근원

빙판 위에 살법한 북극곰을 털실로 보이는 목줄을 쥔 채 단호한 표정을 짓는 사내 아이(2007년작)였다가 활짝 핀 꽃나무 그늘 아래서 동경과 소망어린 시선을 보내던 아이(2011년작)로 등장하더니 너무나 화려해서 끝내 잎 지는 다가올 숙명이 서글픈 어린 소녀로 변신한다.
남성적 톤과 여성적 스타일의 제한은 물론, 딱히 어떤 연배 때만 그럴법한 세대적 특성에 얽매임이 없을 수 있는 다채로운 사연마다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심상을 끝도 없이 재생할 수 있음을 신소영 작가의 고행은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매번 새로울 수 있다는, 우리 성인들일지라도, 아니 성인들일수록 자꾸 떠올리고 싶고 재음미하고픈 생의 구비마다 무심코 지나쳤던 또는 잊어버렸던 절실함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각성의 길로 걸어보자고 손을 내밀어 준다. 


어린아이로만 재구성한 세상사

그는 작가노트에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이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고 어른이 아닌 아이의 모습과 시선으로 세상 속에 있고 싶고, 세상을 보고 싶다’고 적어 놓았다.
주인공인 어린아이(들)가 옛적 작가자신인지 친구였는지 아니면 직간접적 경험과 성찰과 사색을 통해 알아차리고 상상하며 재구성해 보는 어린아이인지는 전혀 고민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아이 자신일 수 있고 우리 어른들 속에, 무의식으로 잠재해 있으며 지금은 부재하는 유년시절을 극사실적이어서 몽환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대역’ 재현을 펼쳐 보인다.
고충환 평론가는 이 다채로운 세계를 보면서 “……무수한 나를 떠올린다. 내가 미처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 까마득해져버린 나. 어린아이가 순수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어린 나는 과연 순수했을까”묻게 된다고. 재현극이 펼쳐지는 극장 속의 어린아이는 과연 나였던가. 나는 누구였고 누구인가하는 근원적 성찰을 불러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작가 스스로 <연속적으로 변해가는 순간들>이라는 주제에 탐닉했던 것처럼 무수한 발견과 차이의 연쇄를 연속적으로 변해가는 순간들의 집합형상으로 예술세계를 구현한다. 


비현실 불일치의 역설적 동학(動學)

“신소영의 작품에는 사실적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비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그러한 상황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동작과 표정으로서 아이들다운 천진함과 함께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듯한 사색적인 눈매와 그것에 대조되는 미성숙한 아동의 신체구조나 자세 등이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생소한 느낌이 한 작품 안에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결국 아이들이면서 동시에 어른의 모습으로서의 우리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계훈 미술평론가)
신 작가는 ‘포토리얼리스틱’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 안에 어린 아이들을 배치시키는 개성이 두드러진다고 하 평론가는 평한다.
신 작가가 작품에 어린아이들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자기투사’와 회고, 그리고 욕망과 트라우마의 상징으로서 상정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과 욕망, 자아분열과 이중적인 자아의 내면 등의 복잡한 심리들까지 담아내고자 한 것이라는 것.
신 작가는 항상 사진기를 준비하고 다니면서 작품의 소재로 적절한 모습을 가진 아이를 발견하면 보호자의 승낙을 얻어 그 아이를 촬영한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된 아이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상황 속에 아이를 창조해내고 그 아이를 둘러싸는 배경을 구성한다.
고 평론가는 “현재의 자기와 과거 속의 자기, 의식적인 자기와 무의식적인 자기가 서로 만나지는 것. 일종의 자기분신이며 아바타며 얼터에고와 만나지는 이 경험을 통해서” 작가는 결여와 결핍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론적 화두를 성실히 담아내고 있음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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