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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 판타지 김시현 화가 곡진한 사연 그윽한 보따리
극사실 판타지 김시현 화가 곡진한 사연 그윽한 보따리
  • 월간리치
  • 승인 2015.04.10 10:31
  • 호수 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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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로 싸 놓은 ‘보따리’들이 보는 이마다 때로는 판타지로 혹은 주술적 염원으로 아니면 어머니 마음 깊이 아릿한 사연으로, 대단히 소중한 정서적 연원을 무한히 끌어 모아 단아하게 매듭지어 낼 수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킨다. 김시현 작가 정물화가 응축한 서사, 기호, 극사실 조형이 확보한 기품 그윽한 향기는 자연스러운 교감으로 배어든다. 리치에서 안양에 위치한 그의 아뜨리에 방문. 김시현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봤다. 6월 개인전시를 앞두고 밤낮 작품활동에 열정을 쏟는 그를 만났다.

  첫 느낌부터 우아함이 물씬 풍기는 보따리가 범상할 리 없는 공간에 자리해 있다.
오래된 공단 이불 한 자락이나 한복 한 벌을 짓고 남은 자투리를 잘라 만든 것처럼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아예 처음부터 정성을 담뿍 담으려 귀한 비단으로 지어 낸 태가 물씬 드러난다. 분명히 ‘보따리’로 매듭지어 놓은 정물인데, 풀어보지 않고서도 숱한 설화와 사연이 이토록 농밀하게 담겨 있음을 저절로 드러내 보일 줄이야.
작가 김시현에게도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소장은 “이 과정에서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상징물로서 보자기라는 모티브를 발견하고 이 보자기에 담긴 상징적 요소 위에 작가 자신의 내면적인 것들을 담아내어 이를 소통도구로 삼아 자신의 작업 담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관된 조형작업을 해왔다”고 전한다. 


숱한 정서적 감흥 감싸 놓기

단단히 묶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느슨한 매듭 사이에 작가가 의도한 이미지를 살짝, 그러면서도 보란 듯이 받쳐 놓은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보따리 안 내용물의 전모를 알 수는 없는 상황설정에서 작가와 보는 이의 소통은 시작한다.
보자기 문양과 재질을 보니, 틀림없이 귀한 것을 소중하게 여며 놓은 것은 알겠는데, 김수정 평론가는 이 순간을 놓고 “보자기는 보따리를 위해 있다라든지 보따리는 보자기를 필요로 한다든지 하는 존재이유나 목적을 제쳐두고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 한 오브제로서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누군가에게 곧 건네질 귀중한 선물꾸러미인데 잠시 어디 놓아둔 대기”상태로 설정한 탓에 설레임과 궁금증 등의 긴장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는 것이다.
곧 이어 고마움과 정성 등의 느낌, 때로는 누군가에게 전해주려다 건네지 못한 곡절에 따른 아쉬움과 미련, 원초적 옛기억을 불러오는 기호학적 힘에 이끌리기 십상이다. 그러면 그리운 마음이 끝 없이 넒은 한지에 먹물 또는 형형색색 물감 스미듯 촉촉이 번진다.
어머니 어릴 적 달게 목 축이던 샘터처럼 무궁무진한 정서와 사연이 피어나는 매개체로 강력한 존재감이 거기 놓여 있는 셈이다.


생명 마음 정신의 모태를 상징

김종근 평론가에 따르면 처음부터 김시현 작가가 보자기 형상화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초기 그의 작품들은 일상적인 차원의 정물화가 주를 이뤘다가 점진적으로 보자기가 중심이 되는 화풍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사과나 기물들이 정물화처럼 중심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간헐적으로 사과나 정물들이 놓여있는 그런 그림들에서 출발한 그의 매끈한 천 그림은 점점 더 화려한 비단 보자기에서 강렬한 붉은 비단보의 색채가 있는 그림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특별히 반짝이는 천 질감과 빛깔 묘사에 탁월함을 보였던 김시현의 작품들은 이제 보는 것만으로도 럭셔리한 감정,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감정이 넘칠 정도로 귀족적인 화려함”을 기품 있게 그리고 그윽하게 풍기는 단계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회화가 아니라 보는 이의 눈 앞에 사진이나 실물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게 존재하는 보따리인양 다가온다는 점이 독특한 매력을 확산시킨다.
김종근 평론가는 “그의 가지런하고 잘 정돈된 그러면서도 예쁜 장식성을 지닌 보자기의 정성이 곧 작가 자신의 내면적인 것들을 담아내는 가지런한 여성의 정성일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그 포장만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여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물론 보자기는 본래 물건을 전달하거나 보관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보자기는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 염원과 바램을 위한 존경과 예절을 갖추기 위한 의례용 성격까지도 아우르고 있다”고 살폈다.


언어로 담을 수 없는 무한 메시지

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장은 “보자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한국의 전통문양이 새겨진 보자기를 보면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그 어떤 전통적인 것들을 환기시키는 듯한 상징들을 읽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해주었던 보자기처럼 장식적이지 않은 보자기에서도 글이나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 어떤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고 평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시현 작가의 보자기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언어와는 다른 차원의 이미지와 그런 이미지들의 총체로서 서사적 소통을 가능케 해 주는 통로 또는 소통의 마당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김 작가가 그려낸 보자기에는 ‘福’이나‘壽’와 같은 글을 넣어 행복과 무병장수를 비는 주술적인 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십장생, 용, 봉황 등과 같은 품위와 격 그리고 멋을 위한 소재로 여러 가지 색채와 문양이 등장하기도 한다.
보자기 그 자체가 무한히 새롭고 자유로운 기호와 상징 그리고 색채와 장식으로 구성된 예술품이자 주술적 도구이거나 극진한 예를 갖춘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보는 이와 작가를 연결하는 셈이다.


기호와 메시지 긴한 서사의 열매

작가가 많은 작품에 설정한 ‘The Precious Message’라는 명제에서 말하듯 보자기가 보따리로 놓인 곳과 배경 그리고 시선까지 특별한 장식성을 띤 소중한 메시지들이 특별한 전언과 소통을 낳으며 수많은 의미로 해석되고 간직되는 일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작품마다 달리 구현된 기호나 메시지는 결국 이 방대하고 결코 마르지 않을 서사성의 뿌리에서 뻗어나와 핀 꽃이거나 잎사귀, 탐스럽게 맺힌 열매 가운데 일부일 것이다.
김종근 평론가는 찬사를 던진다.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정신과 끈기, 뛰어난 우리의 전통보자기의 조형성과 단순미 그리고 자연스러움 등 아마도 이러한 세계를 가장 멋있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김시현 말고 또 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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