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12:33 (월)
금융시장과 정부 가격개입
금융시장과 정부 가격개입
  • 월간리치
  • 승인 2018.01.10 16:41
  • 호수 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격 깎기 직접 규제 안돼” 금융·서비스 ‘퇴행’ 우려

금융시장이 자율적이고 자연스럽게 형성시키곤 하는 가격 수준에 대해 금융정책 당국이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며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국금융학회가 바로 이 주제를 놓고 2017년 동계 정책심포지엄을  열었다. 리치에서 이날 주제 발표와 토론에서 오간 내용을 간추려 본다.

IT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졌고 최근에는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투자수요가 늘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금융시장 가격에 개입하게 되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과소투자와 품질이 저하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소비자 가격 부담을 낮추는 규제가 작용하는 경우 금융사 이익을 희생해서 정책 목표를 얻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들이 부실을 흡수할 체력이 약해질 수 있어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근본적 원인은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카드수납 의무화 정책을 쓴 탓에 결국은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론을 부르고 카드사와 가맹점간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을 낳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금융위원장도 경계했던 시장개입

이같은 지적은 한국금융학회가 지난해 12월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마련한  ‘2017 동계정책심포지엄 - 금융시장과 정부의 가격개입’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다. 
최종구 현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7월 위원장 후보 시절 불필요한 시장개입에 거부감을 제한적으로 표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부의 금융가격 개입을 둘러싼 논의가 속시원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할 때 이번 논의는 사회적 합의를 향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위원장도 후보 시절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금융 수수료 적정성 심사’와 관련해 “불필요한 시장개입”이라고 지적했다. 당국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책정한다면 가격 담합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아울러 최 위원장은 은행과 증권, 보험 등 업권별 수수료에 대해서는 당국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업계 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금융학회 심포지엄 주제 발표에 나선 학계 두 전문가는 비판적 기조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개입 없는 시장, 과소투자 폐해”

이날 이경원 동국대 교수(경제학) 교수는 ‘금융시장 가격개입과 투자유인’ 주제발표에서 사실상 ‘과점화’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가격규제가 긍정적 기능을 하는 측면에 대해 인정했다.
그는 ‘과점시장에서 사업자들이 서비스 품질 수준을 높이려는 투자 경쟁을 한 후 서비스 가격경쟁에 돌입하게 됐을 때’를 예로 들었다.
만약 가격규제가 없는 상태라면 한 사업자가 투자를 통해 품질을 제고하더라도 경쟁 사업자가 가격인하로 대응할 경우 품질을 높이는 투자는 충분한 수익을 얻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면 금융사 투자는 품질 제고에 필요한 수준보다 낮아지는 ‘과소투자(underinvestment)’가 만연하는 문제를 드러낼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금융사 이익 희생시킨 댓가?

이에 반해 그는 “가격규제를 도입하면 사업자들의 가격경쟁을 제거함으로써 투자의 유인을 제고시킬 수 있으며, 충분히 낮은 수준의 규제가격으로도 효율성 달성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일면적으로는 가격규제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그는 “이 경우 사업자 이윤에 희생에 기댄 것이 되고 말면 사업자의 이윤이 크게 낮아지거나 음(-)의 이윤을 가져오는 문제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능력, 즉 건전성 확보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걱정했다.
따라서 그는 “이런 경우 가격규제 정책을 편다면 사업자들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정책을 수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달리 말하면, 정부 개입은 가격에만 국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보조금지급과 같은 다른 차원의 개입까지 수반되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금융업 경쟁력 살리는 규제보완

소비자 지불 부담을 줄이는 가격 규제로 금융산업 후퇴만 가져오지 말고 금융사에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조건부 가격규제’ 정도가 가능한 모델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최근 IT기술의 발전으로 금융기관에서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규 서비스 개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추세를 비춰보면 의미 있는 논리다. 더욱이 안전한 금융거래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안전한 시스템 구축 등 금융서비스 품질이 금융기관 간 핵심 경쟁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금융관련 서비스 자체의 가격만이 경쟁요소가 아닌 서비스 품질도 경쟁요소이며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한 중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비스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한데 독과점 시장 체제 때문에 소비자 가격부담이 커지거나 과잉 경쟁 탓에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을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진 현실에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규제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소신 발언인 셈이다.


영세 가맹점 수수료, 갈등 촉발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정책 평가’에서 영세중소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를 깎아 준 가격 개입 이후 사회 갈등이 지속됐지만 근본 원인은 선심성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박 교수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의 진정한 원인으로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로 표현되는 잘못돈 정책이 근본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맹점 수수료 수준을 논하기 전에 세원을 투명화해서 세수를 늘릴 목적으로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를 도입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카드 의무수납제로 인하여 가맹점의 협상력이 사실상 박탈되면서 시장 원리에 따라 효율적 비용 분담이 이뤄지는 기능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법률로 카드 수납을 의무화 한 상태에서는 카드사가 요구하는 수수료를 그대로 부담하게 되고 영세 소상공인이 불만을 표출하게 된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진단인 셈이다.


”카드 의무수납제 폐지가 순리”

박 교수 진단은 “문제의 근본원인은 도외시한 채 이익단체의 압력에 영합한 정치권이 정부로 하여금 가맹점 수수료 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도록 요구하는 법률을 제정했으니 사회적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신용카드시장은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이라는 독특한 구조인데 신용카드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가 서비스 비용보다 높으냐 낮으냐를 따져서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는 보호정책을 쓴 것이 넌센스라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이어 “신용카드 의무수납제 폐지와 함께 가맹점 수수료 결정은 시장 선택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무수납제가 폐지되면 가맹점이 카드 거절 권한을 지니게 되고 신용카드 수수료 협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카드 사용자 불편만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안을 내놨다. “일정 금액 이하 소액에 대해서만 카드 수납 거절권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자영업자 탈세 증가 우려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제도를 강화하면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펼칠 수 있는 주장이었다.
금융학회가 진행한 이번 정책심포지엄은 김대식 한양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민세진 교수(동국대), 신진창 중소금융과장(금융위), 연태훈 선임연구위원(금융연구원), 이은영 대표(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홍우선 대표(나이스정보통신)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