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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 월간리치
  • 승인 2009.09.28 00:56
  • 호수 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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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부(wealth)의 원천 사회적 자본

21세기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부(富)의 원천이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사회적 자본의 의미를 정히 이해하려면 자본 개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물자는 소비재이지만 소비재 생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기계, 공장설비 같은 생산재를 발전시켜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을 탄생시켰고 이런 생산재를 경제학자들은 자본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것이 제1세대 자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물적 자본(物的 資本, physical capital)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학자들은 좋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교육 투자로 육성된 인적 자원을 경제학자들은 인적자본(人的 資本, human capital)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제2세대 자본개념인 셈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자 선진국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를 방문해 조사한 후 한국의 경제성장은 훌륭한 인적 자본의 결과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20세기 후반 글로벌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 조직과 조직 사이 등 ‘사이’의 품질 여하가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예를 들면 조립업체와 부품업체 사이가 상호신뢰(trust)속에 기술 및 코스트 데이터를 공유(openness)하면서 긴밀히 협동(solidarity)하고 그 과실을 정당한 원칙(integrity)에 따라 배분하는 사이이냐, 아니면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부당한 사이이냐에 따라 이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은 달라진다.
‘사이’에 관한 철학 차원의 고찰을 위해 물리학에서 밝혀낸 결합 에너지(binding energy) 이야기를 해 보자.
자연계에서 가장 단단한 결합체는 원자핵이고 원자핵은 양성자(protons)와 중성자(neutrons) 등 두 종류의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양성자들은 같은 종류의 (+)전기를 띄고 있으므로 서로 반발할 것이고 중성자들은 전기적 중성이므로 결합력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강력하게 결합하는 이유를 몰라 물리학자들이 고전하고 있었다.
유가와 교수는 핵 속 입자들 사이를 매개하는 ‘무엇’이 결합력을 생성한다는 이론을 발표했고 이 이론이 증명되면서 유가와 교수는 노벨상을 받았다. 물리학자들은 또 이 ‘무엇’을 중간자(meson)라고 부르게 됐다.
인간 사회에도 중간자에 해당하는 무엇이 있어야 결합 에너지가 생성될 것이다. 경영학자들은 신뢰성(trust), 원칙성(integrity), 협동성(solidarity), 개방성(openness) 등이 인간사회를 결합시키는 ‘중간자’ 역할을 하며 이들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기본 요소로 꼽는다.
신뢰성은 약속(promise)을 지키려는 의지를 뜻한다. 신뢰성의 축적이 위대한 힘을 발휘한 사례는 이미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역사 속에 나온다.
제(齊)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워 이긴 후 노의 땅 수(遂)를 할양 받는 강화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 때 노의 장군 조말(曺沫)이 단 위로 뛰어올라와 제 환공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수를 빼앗기면 노는 굶어 죽는다. 수를 뺐지 않겠다고 공약하라”고 강요했다. 환공은 위기를 면하기 위해 조말의 요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조말은 단에서 내려왔다.
환공은 협박에 의한 약속은 무효임을 선언하려고 했으나 참모 관중(管仲)은 “비록 협박에 의한 약속이라도 그것을 지키면 제후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신뢰를 얻으면 천하를 얻게 됩니다”하고 조언했다. 관중의 조언에 따라 환공은 억울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 후 남쪽에서 초나라가 북진해 올라왔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북의 제후들은 동맹을 결성했다. 여기서 제후들은 억울한 약속도 지켜주는 환공을 신뢰하여 그를 사령관으로 추대했다. 사회적 자본(신뢰성)을 축적한 환공은 원대한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원칙성(integrity)은 도덕적 원칙(principle)을 준수하는 의지이다. 1979년까지 한국 식품회사들은 미국에서 우지(牛脂)를 수입하여 라면 등 식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지가 미국에서는 공업용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우지를 정제해 사용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한 회사는 식품제조의 도덕적 원칙을 준수해 톤(ton)당 $84의 원가상승을 감수하며 식물성 기름으로 교체했다.
1989년, 공업용 우지를 식품에 사용한다는 비난이 언론을 통해 폭발하면서 소위 ‘우지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10년 전에 식물성 기름으로 교체한 회사는 식품제조의 원칙을 준수하는 회사로 소비자의 인정을 받아 현재 시장점유율 70%를 넘어섰다.
“나에게 긴 지렛대(lever)만 준다면 지구라도 움직일 것이다.”
이것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지렛대 원리를 발견하고서 한 말이다. 이제 사회적 자본이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경쟁력의 도구가 됐고 21세기 부(richness)의 원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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