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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경기개발연구원장 칼 마르크스의 세계관보다 더 복잡한 세상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경기개발연구원장 칼 마르크스의 세계관보다 더 복잡한 세상
  • 월간리치
  • 승인 2009.10.30 00:09
  • 호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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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은 경제이론보다는 이념에 의해 주도됐다. 1950년대 밀튼 프리드먼은 이제 이념적 차이보다는 오직 경제논리에 의해 경제정책이 주도되는 시대가 됐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50여 년은 문자 그대로 이념이 경제정책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2차 대전 이후 동서 진영의 경제체제 차이나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좌우파 정당간의 경제정책 차이는 경제이론보다는 서로 다른 이념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 주택금융 위기도 ‘일 가구 일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평등이념의 산물이다.
20세기 공산, 사회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사회를 통틀어 인류의 사상을 지배해온 공통된 이념은 바로 평등의 이념이며 이 이념이 20세기 후반의 세계 경제정책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 이념의 배후에는 바로 칼 마르크스의 세계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과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를 보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투쟁 과정을 통해 변화해 가며 이 과정은 전자가 후자를 착취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계급투쟁은 종국적으로 노동자 혹은 무산자 계급의 승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사회의 멸망을 가져온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관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대응전략을 낳았다. 우선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불합리하다고 보고 이를 타파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연적 소멸을 기다리기 보다는 노동자혁명을 통해 인위적으로라도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자본가를 청산하고 노동자주도의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향하게 됐다. 
한편 이와는 다르게 자본주의 체제가 마르크스가 지적한 어두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타파하기보다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불평등의 문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는 바로 수정자본주의 혹은 혼합경제 더 나아가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경제체제의 진화, 정착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득재분배장치를 통해 ‘착취’의 결과를 완화하여 민주사회의 평등의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어느 입장이든 대응 방법상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마르크스가 지적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선발자의 후발자에 대한 착취라는 자본주의 경제관은 모두 다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20세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인류의 공통된 세계관은 마르크스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관은 옳은 것인가. 그래서 자본주의는 종국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우선은 20세기 중 일부국가들의 40여 년간에 걸친 사회주의 실험이 모두(물론 북한을 제외하고)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마르크스적 자본주의관이 잘못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부상화고 있는 새로운 과학관인 ‘복잡계 과학관(complexity science)’에 의하면 이 세상은 상호 협력을 위한 호혜적 만남을 통해서만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이러한 만남이 없는 사회는 결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칼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계급투쟁과 착취가 자본주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이 체제는 결코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250만년도 더 되는 세월 동안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분업과 전문화 원리에 기초한 교환경제시대인 ‘수렵과 채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역사 자체가 마르크스 세계관의 허구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우리가 그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보는 ‘복잡계 과학관’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부분이 합쳐 부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복잡한 세상은 부분만을 분석해보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기존의 환원주의(reductionism)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 만물은 서로 다른 개체끼리 만나 힘을 보태어 훨씬 더 큰 힘 즉, 시너지를 창출함으로써 부분과는 다른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 나간다.
서로 다른 무기물이 만나 유기물이 되고 서로 다른 유기물이 만나 단세포 동물이 되고 서로 다른 세포들이 만나 인간 생명을 창출하는 생명 현상의 오묘함도 결국은 서로간의 만남과 시너지의 창출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더 좋은 짝을 만나기 위한 경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은 이웃을 만나지 않고 더 높은 질서인 생명을 창출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나 시장경제의 작동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경제사회발전이란 더 좋은 짝을 만나 더 큰 힘을 창출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마차를 타던 경제가 자전거를, 자동차를, 기차를, 비행기를, 우주선을 타는 사회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개인들이 힘을 합쳐 강한 조직을 만들어내고 보다 훌륭한 개인들과 조직들이 힘을 합쳐 시너지를 창출함으로써만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졸저 <진화를 넘어 차별화로>).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는 계급투쟁이나 착취가 아니라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과정을 통해 변화?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길은 나보다 훌륭한 이웃을 두어야 한다는 명제가 도출된다.
이 세상의 변화는 선발자가 후발자를 착취해서가 아니라 후발자가 선발자를 무임승차하여 베낌으로써 동반 성장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남의 노하우를 모방하고 베낌으로써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앞선 선각자 그것이 자본가이든, 혁신가이든, 부모든, 선생님이든, 선배든, 더 나은 동료든, 더 나은 후배든, 이들을 청산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들을 역할 모델로서 이웃으로 두고 ‘착취’함으로써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관은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뒤집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더 좋은 이웃이 없이 모두가 같고 평등한 사회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가 없어 영원한 휴식을 벗어날 수가 없다.
같은 세포끼리의 만남은 세포덩어리를 만들어낼 뿐이지 생명을 창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복잡계의 원리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말로는 이미 정해진 길이었다.
이 세상은 어두운 면도 있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배우고 도움으로써 살길을 찾는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무쌍한 복잡한 세상이다. 훌륭한 이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는 흥하고 역으로 흥하는 이웃을 청산하려는 사회는 필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로운 과학관의 시사점이다.
이제 인류는 마르크스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칼 마르크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 프로필 ==================
▲ 1946년 4월 6일(출생 : 제주)
▲ 학력
미국 UCLA 대학원 경제학박사(1983),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석사(1975),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1971)
▲ 경력 
경기개발연구원 원장(2006년 7월~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2009년 3월~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2005년 5월~2008년 8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1997년 4월~2005년 4월), KDI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1985년 6월~1997년 3월), Federal Reserve Bank, Minneapolis(Minnesota) Economist(1983년 3월~1985년 6월), 한국은행 조사1부 금융재정과 행원(1973년~1977년)  
▲주요활동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2008년 3월~현재),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2008년 2월~현재), 전국시도연구원협의회 회장(2008년 1월~2008년 12월), 한국규제학회 회장(2006년 4월~2008년 4월), 제주학회 회장(2005년~2006년 12월), 한국비교경제학회 회장(2005년 1월~2006년 12월),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2002년 3월~2003년 2월),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2000년 8월~2003년 2월),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위원(1998년 4월~2004년 4월),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1995년 6월~1997년 3월)
▲상훈
제25회 정진기언론문화대상(2007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2006 시장경제대상' 출판물 부문 우수상(2006년 12월), 산업포장-정보통신 산업발전 기여(2005년 4월), 제16회 정진기언론문화상(1998년 7월), 제26회 매경 Economist상(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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