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16:39 (화)
전시회란 무엇인가? 
전시회란 무엇인가? 
  • 유지선 특파원
  • 승인 2023.06.01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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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의 구조·만드는 법

 

본격적으로 봄 날씨를 만끽하기 시작한 파리는 마치 축제 분위기다. 산들거리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과 함께 도시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그걸 반영하기라도 하듯 파리에는 여러 대형 전시회의 소식으로 들썩거린다. 대표적으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마네·드가’ 전, 퐁피두센터의 ‘노먼 포스터’ 전, 루이비통 재단의 ‘바스키아 X 워홀: 4개의 손’,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르누치 미술관 (Musée Cernuschi)의 ‘김창열: 물방울과 흔적’ 전 등이 있다.


최근 들어 국내외를 불문하고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연상케 하는 티켓 품귀 현상과 2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전시회를 심심치 않게 미디어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어마어마한 미술사적 가치와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전시회에 열광할까? 유명한 작품과 유명한 장소의 만남, 그 이상의 무엇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걸까? 그 본질과 구성, 전시회를 만들어 내는 이들을 탐구해 본다.

우선 전시회의 정확한 뜻을 알아보자. ‘특정한 물건을 벌여 차려 놓고 일반에게 참고가 되게 하는 모임’으로 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최되며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일반적으로 전시회를 지칭하는 영문 표현으로는 ‘쇼(show)’, ‘페어(fair)’, ‘엑시비션(exhibition)’, ‘트레이드 페어(trade fair)’, ‘트레이드 쇼(trade show)’, ‘마켓(market)’, ‘살롱(salon)’, ‘샘플 페어(samples fair)’ 또는 ‘엑스포지션(exposition)’ 등이 있다. 중세 라틴어의 ‘엑시비션넴(Exhibitionem)’에서 유래된 용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전시회, 즉 미술작품이 걸려 있는 행사는 주로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린다. 공통적인 골격으로는 ‘주제’와 ‘작품’이 있다. 주제로는 아티스트가 시사하는 물음, 작품들의 공통적인 테마, 미술사적인 연구 등 천차만별이다. 이 주제를 시작으로 전시회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작품을 통해 탐구하며 답을 찾는다. 관객들은 작품을 감상하고, 전시회의 글과 작품의 설명을 읽으며 그 과정을 지켜본다. 시각적, 학문적 그리고 철학적 경험까지 한데 느낄 수 있는 종합적 이벤트인 셈이다.


이토록 다양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해야 하는 만큼, 전시회에 있어 전시 기획자, 즉 ‘큐레이터’(국내 기준 미술관 소속이면 ‘학예사’로도 불린다)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이들은 각급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시나 기획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학예 종사자를 가리킨다. 예술 작품과 유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물론, 전시 의도를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게 기획할 수 있는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가 요구되는 직종이다. 하나의 전시회를 세우기 위해 큐레이터는 주제, 자료 조사, 글(도록을 제작할 때 책 한 권의 분량을 뽑아야 한다) 예산 확보, 작품 선정, 작품 확보 (대여 등), 전시회 공간 디자인, 작품 배치와 설치, 전시회 홍보 등, 전시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획하는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린다. 이 즈음에서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어디에서 개최되는지에 따라 전시회의 성격은 많이 달라진다. 전시회가 품은 콘텐츠와 목적도 달라진다.


첫 번째로 갤러리의 전시회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로 작품의 판매라는 목적에 충실하다. 전시회의 총 기획은 대체로 갤러리의 디렉터와 소속 큐레이터 (또는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직원)가 담당한다. 갤러리 측에서는 아티스트와 직접 상의해 전시회에 걸릴 작품들을 함께 선정한 뒤 그에 맞추어 전시회의 제목과 테마 등의 콘텐츠 기획을 한다. 이후 갤러리가 작품 판매를 위해 영업활동을 수행한 후 판매 수익을 아티스트와 나누는 구조다.
갤러리에서는 아티스트의 가장 따끈따끈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을 직접 구매해 그의 커리어 일부가 될 수 있다. 작품 컬렉팅을 업으로 하는 컬렉터에게는 아티스트와 갤러리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다.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갤러리의 전시회를 찾을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로 미술관 전시회는 하나의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가깝다. 또 전시 기획, 영업, 마케팅, 운영, 설치 등 대부분의 소속 부서가 투입되는 거대한 규모다. 준비 기간 또한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릴 수 있다. 전시 기획 부서는 주제 선정부터 그에 관한 연구와 글 집필, 작품 선정과 확보, 공간 디자인과 홍보 자료 등까지 대략적인 큰 그림을 그린 뒤 각 담당 부서와 소통해 가며 살을 붙인다. 전시회의 규모에 따라 외부 협력사들의 개입을 요구한다. 대형 전시회는 작품 대여와 예산, 공간,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사들이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블록버스터 전시회들은 모두 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 기획전에 준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적게는 1년 많게는 수년의 준비 기간을 요구한다.


미술관의 전시회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주제와 작품 테마 등을 선보인다. 전시회 밖의 콘텐츠 (설명회·토크·굿즈 등) 또한 다양해 작품과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한다면 미술관의 전시회를 눈여겨보기를 바란다. 미술사의 특정 테마와 장르에 흥미가 있거나 또는 한 미술관의 소장 컬렉션에 흥미가 있을 때도 추천한다. 전시회와 더불어 미술관의 건축물과 주변 시설물 (공원 등)을 감상하러 가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는 서울 옛 대법원 청사를 개조한 서울시립미술관, 옛 기무사를 바탕으로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이 있다.


갤러리와 미술관 밖에도 전시회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판매를 위해 수많은 갤러리가 한데 모인 갤러리의 연장선 격인 아트 페어, 수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전시회의 축제 비엔날레와 트리에날레 등 (대표적인 예로 베니스 비엔날레)이 있다.

이렇듯 전시회에는 수많은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 형태 또한 다양해 그 자체만으로도 종합 예술 프로젝트라 부를 수 있다. ‘전시 기획을 발명이라고 생각한다’던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1933~2005)의 말대로 전시회는 단순한 미술작품의 모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다.

논문 연구에 필적하는 자료 조사와 글, 수백 점의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작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의 배치, 벽지 색, 조명, 배경음악, 전시 설명에 담긴 도슨트의 열정, 전시회를 한데로 압축해 놓은 도록 등 이렇듯 많은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전시회가 될 수 있다. 다음에 독자들이 전시회를 방문할 때 조금은 달라진 시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유지선 프랑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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