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3 08:10 (월)
조각가 ‘이일호’ “조각하는 자의 시간은 온전·충실하다”
조각가 ‘이일호’ “조각하는 자의 시간은 온전·충실하다”
  • 월간리치
  • 승인 2011.02.26 04:04
  • 호수 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가는 한순간에 번쩍 떠오르는 영감에 황홀한 무아를 느낀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는데도 온 것 같은 영감에 미안하고 당황하여 눈물이 절로 흐른다. 40년 넘게 조각 작업을 하고 있는 이일호 조각가가 그렇다. 이 작가의 조각은 넓어서 흥미롭고 깊어서 심오하다. 미니멀적 추상에서 초현실을 넘어 초자연적 우주의 시원과 삼라만상 생멸의 근원을 파고든다. 에선 이일호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봤다.


 “조각은 더디다. 더딘 만큼 천천히 흘러서 조각하는 자의 생각은 느슨하다. 조각은 알량한 것들을 성큼성큼 취하며 숨 가쁘게 달리는 현대미술을 따라 잡지 못한다. 조각이 현대 미술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조각하는 자의 시간은 온전하고 충실하다.”

“내 몸과 정신을 임상 실험했다”

이일호 작가가 조각가로 입문한 것은 지난 1970년이다. 당시는 근대 조각의 말미와 현대 조각의 초입 시기였다. 그런 시기 조각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그는 자신마의 특유한 관조로 물밀 듯 밀려오는 맹목적인 현대 미술과 맹렬하게 대적했다.
이 작가의 창과 방패는 바로 현대 조각으로 터득한 공간과 근대 조각에서 배운 메스였다. 1970년대 미니멀리즘이 대세이던 시절에 그는 기하학적 형상과 유기적 형상을 결합한다든지, 소재 고유의 물성과 역학 등 모더니즘 조각을 파고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형상 조각으로 선회했다. 
결과는 좋았다. 이 땅의 토양에서 미미한 것이 자라 원대함이 되는 희망을 입증했고, 아직도 현존하기에 그는 한국 조각의 축복이라 할 만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온전함과 충실함을 바탕으로 해서 40여 년 이상을 조각이란 도구를 사용해 내 몸과 정신을 임상 실험했다.”
이 작가의 조각에선 조각에 대한 무지가 무색할 만큼 다양하고 치열한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쪽은 추상보다는 형상 쪽이다. 실제 이 작가의 조각은 자연스럽게 인체를, 인체의 조건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그의 작품을 보면 물과 불이 하나로 만나고, 현실과 초현실, 현실과 신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일련의 상징주의 경향의 작업 등 작가의 형상조각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고 깊다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들을 실험하고 의미로는 존재론적인 깊이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조각이 싫다. 당장이라도 조각을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 동안 내가 만든 조각들이 아우성으로 항의한다. 내가 만든 스라소니 같은 내 과거의 조각들로 인해 신음한다.”
이 작가는 조각들의 아우성을 들을 때마다 ‘글쎄 내가 왜 그랬지?’라고 생각하며 업보라고 믿는다고 한다. 한 작품의 살고 죽음은 그 작가의 지혜로움에 달려 있고 그 지혜로움이란 것이 작가의 정신력과 그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의 운 좋은 결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저 넘어 우주에 관심 있다”

이 작가는 예술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예술은 사실 혹은 현실로부터 미리 망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은 온갖 일상의 잡사를 털어내고 오직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선험적 의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제 스스로의 이명에 취해 세상에 없는 이상한 세계를 열어간다. 그런데 이런 똥고집은 멀쩡한 현실을 교란시키고 방탕하게 해 마침내 멀쩡한 자들의 권태를 치유하는 괴력을 지녔다.”
오직 예술가만이 무경험 무원칙을 토대로 해서 자기 예술을 심판할 때 진정한 순수 예술의 싹이 튼다는 게 이 작가의 설명이다. 예술은 하는 것도 자유이고 보는 것도 자유며 예술은 예술의 이론적 배경을 모른 채로 직관적인 신명이 솟아남을 신명으로 친다고.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설명하려는 것은 철학자가 수락을 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의 해석이 오류에 빠지더라도 장님이 코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듯 내버려둬야 한다.”
최근 이 작가의 관심은 저 너머 우주에 있다. 형상을 취하면 공간이 협소해지고 공간을 넓히면 형상이 달아나지 않는 침묵의 무한공간이다. 공간과 형상이 분리되지 않는 곳이다.
“무한으로 흩뿌려진 우주는 정교하면서도 무자비하다. 그곳은 여타한 이성이나 사소한 감정을 들이댈 수 없는 곳이다.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그곳에는 그 어떤 현묘한 철학도, 얼어 죽을 인간의 휴머니즘도 통하지 않는다.”
이 작가의 요즈음 작품에서 존재에의 관심은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주의 운행 방식을 도상화한 것이다. 우주가 정해진 형식(형상)이 따로 없는 만큼 그 형식은 형상보다는 추상, 실제보다는 관념상의 외관을 취하고 있다.
겉과 속, 안과 밖의 경계와 구분이 없는, 다만 무한하게 반복되고 순환하는 운행이 있을 뿐인 무궁한 흐름만이 있을 뿐인 우주에 진입하게 되면서 그의 조각은 또 다른 전기를 예비하고 있는 것.
“우주에는 겉과 속이 따로 없다. 우주는 그것들 스스로의 자연스런 힘으로 비밀스런 구멍과 숨은 공간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내 들숨에 빨려든다. 우주의 원소들이 내 심장의 힘찬 엔진과 허파로 순환한다. 나는 이제 우주의 원소와 내 원소가 같고, 우주의 허하고 들뜸과 그 아득함이 나와 동일함을 안다.”
이 작가의 포부는 베토벤이 귀머거리가 되어서 더 위대한 소리를 들었듯이, 이제 눈이 멀은 듯 무한공간을 열어 가겠다는 것이다. 조각에서 힘을 빼고 힘이 빠진 듯한 헐거움으로 잠들고 깰 때의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를 노려서 작가 사유의 그물을 던져 ‘조각’이란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 작가의 이 같은 소망은 최근 작품에서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과거 그가 보여준 시선은 세상 바깥쪽에서 인간 쪽으로 응시해 들어오는 타자적 시선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경계를 넓혀 우주와 역사의 맥락에다가 타자적 시선을 연결시키고 있다. 작품에선 한 달인의 손길이 빚어낸 우주와 인간사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프로필 ==========================

▲ 1946년 충남 보령 출생
▲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소 전공 졸업(1980년)
▲ 경력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1982년∼1986년),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출강(1986년∼1988년), 서울시립대학교 문리과대학 환경조각학과 출강(1989년∼199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출강(1992년∼1994년), 상명대학교·목원대학교 대학원 조소 전공 출강(1995년∼2000년), 한국현대조각회 회장(1996년∼1997년),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한국현대조각회 회원·홍익조각회 회원(1998년∼현재)
▲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4회(1977년∼1982년), 한국일보미술대전 우수상(1978년), 제2회∼4회 중앙일보미술대전 특선(1979∼1981년), 제5회 중앙일보미술대전 장려상(1982년), 제6회 중앙일보미술대전 대상(1983년), 제주 신천지미술관상(1988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