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7 10:16 (화)
동서양의 교차로 튀르키예
동서양의 교차로 튀르키예
  • 이덕희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0.28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매력을 느끼다

 

튀르키예(Turkiye)는 아시아 서쪽 끝 동지중해에 면해있는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와 유럽 발칸 반도 남단의 일부분을 차지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나라다. 1923년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600년 이상 지속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건설했다. 정식 명칭은 튀르키예 공화국(Republic of Turkiye)이다.

이스탄불 역사지구(Historic Areas of Istanbul)는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2000년 넘게 정치와 종교, 예술, 역사의 중심지로서 여러 역사적 사건과 많은 관련이 있다.

도시 북쪽은 자연 항구인 골든 혼(Golden Horn), 동쪽으로는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 남쪽으로는 마르마라(Marmara)해에 둘러싸인 반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532~537년에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가 설계한 성 소피아 대성당과 1550~1557년 건축가 시난이 설계한 쉴레이마니예(Suleymaniye) 모스크 복합단지를 비롯해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 시절의 독특한 건축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테오도시우스 2세의 성벽은 447년에 건설됐다. 군사 건축물의 선도적인 표준이 됐다. 성 소피아 성당은 모든 가족 교회의 모델이 되고 나중에는 모스크의 모델이 됐다. 콘스탄티노플의 궁전과 교회의 모자이크는 동서양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Hattusha : the Hittite Capital)는 옛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다. 정돈된 도시 구조, 사원과 왕궁 등 건축 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사자의 문(Lion’s Gate)과 왕의 문(Royal’s Gate) 그리고 야질리카야(Yazilikaya)의 바위 신전에 새겨진 부조는 예술 유적으로 독보적이다. 이 도시는 기원전 2000~1000년의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 문명에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투샤에는 왕실 거주지, 사원과 요새 등의 건물 유적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Hierapolis-Pamukkale)는 평원 위로 약 200m 절벽 샘에서 나오는 칼슘을 함유한 물로 인해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멋진 자연경관 속에 훌륭한 그리스-로마식 온천 시설을 갖춘 히에라폴리스가 조성돼 있다. 유해한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아폴로 신과 지하의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져 있다.

세베루스 시대에 만들어진 극장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의식과 희생 제물을 묘사한 프리즈로 장식돼 있다. 대형 공동묘지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장례 풍습을 보여준다. 기독교 건축물이 많이 있는데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 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이 건축물들은 초기 기독교 건축물의 우수한 사례다.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셀리미예 사원 복합 유적(Selimiye Mosque and its Social Complex)은 커다란 돔 1개와 날렵한 4개의 첨탑이 있는 정사각형 모스크가 가장 눈에 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 시난(Sinan)은 모스크를 비롯해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신학교)와 커버드 마켓(covered market: 지붕을 덮은 장터), 시계탑(clock house), 안뜰과 도서관 등으로 구성된 이 복합 단지를 최고의 걸작으로 여겼다.

화려한 이즈니크(Iznik) 타일로 장식한 내부는 위대한 예술 양식으로 여겨진다. 지붕이 둥근 셀리미예 모스크는 공간 개념과 기술의 조화, 도시 경관에서 가장 중앙을 차지하는 덕분에 오스만 제국 최고 절정기를 보여주고 있다. 2011년 이에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돼 간다. 이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으로 역사적으로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연결하는 교차로 역할을 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외세의 침략도 많았다. 지난 30년 동안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이로 인한 유산들의 보존 상태가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보다 더 관심과 보호가 절실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