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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그룹 장재중 회장 “성과 모두가 나눠야 기업”
유니그룹 장재중 회장 “성과 모두가 나눠야 기업”
  • 월간리치
  • 승인 2017.05.10 10:07
  • 호수 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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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 남국 필리핀에서 6개 계열사 경영 못지않게 선교회와 난치병재단 운영에 힘쓰는 자랑스런 코리안. 장재중 유니그룹 회장이다. 프랑스 회사 소속으로 디뎠던 필리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산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성과를 나누는 것이 기업이라고 믿는다. 리치에서 기업인이자 참다운 삶을 희구하는 신앙인으로서 담담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월10일 창립 31주년을 맞아 모든 임직원들이 다함께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온 회사. 필리핀에서 해운 및 물류업을 하는 ‘유니쉽’이야기다.
1986년 설립한 이 회사를 포함해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장재중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과 코리안 위상을 자랑스럽게 끌어올리는 삶이다.
물론 그는 묵묵하게 신념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머리에 많은 지식이 있지만 가슴으로, 또 발로 내려오지 못하면 행함이 없습니다.” 깨우치고 배운 것을 행함이 있어야 가치 있는 삶이라는 믿음에서 묵묵히 걸어온 길.
“신앙인으로서 저는 ‘세상이 기대하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을 소망할 뿐입니다.”


해운·물류 중심 중견그룹 경영

유니그룹은 해운선박대리점인 ‘유니쉽’을 필두로 종합물류회사인 ‘유니쉽로지스틱’과 ‘아티코 트란스’, 무역회사인 ‘오픈씨’, IT로 성장하는 ‘아이티 꼬레아’, 항만하역회사인 ‘제이티 카고핸들링’ 여섯 기업 식구가 있다.
여기다 NGO 단체 사마리아구라선교회와 한센병 환우를 돕는 소록유니재단 등도 한 식구로 구성된 독특한 가계도를 형성했다.
“해운·물류 쪽은 비지니스의 9할이 중국과 필리핀 간 교역으로 이뤄지고 있어 해마다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IT.Corea는 인터넷 전용선 (ISP)를 깔아주는 회사입니다. 커피점 체인으로 Coreon.gate 로 늘려나가고 있어요.”
Coreon.gate는 필리핀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브랜치를 늘리고 있는 인터넷카페다.
요즘 장회장은 여기에 더해 필리핀은행과 손잡고 해외로 간 필리핀노동자들과 필리핀 내 모바일 송금업을 준비하고 있다. 송금 플랫폼을 깔게 되면 해외에서 번 돈을 필리핀으로 저렴하고 신속하게 송금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실패를 거름 삼아 나눔 경영

장 회장이 했던 사업 모두가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1990년에 설립했던 봉제회사는 한 때 종업원 규모가 약 1000명에 이를 정도로 호실적을 냈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외환위기 때 문을 닫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1986년 유니쉽 창업을 하던 해 찾아온 길운을 평생의 대운으로, 필리핀 지역 사회와 한인 사회의 홍복으로 전환시키는 숨은 거목이었음을 입증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다 프랑스 회사에 스카웃 되어 필리핀에 도착한 게 1984년 7월입니다. 채 2년이 되기 전인 1986년 2월 시민혁명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이 하야하고 코리 아퀴노 대통령이 취임하는 격변기에 유니쉽을 설립했죠.”
다니던 회사가 시민혁명에 화들짝 놀라 프랑스로 철수하는 바람에 어려운 시기였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결심한다.


사랑받는 기업인·코리안

“외국계 해운회사들이 다 도망가고 없었기에 저에게 기회가 많이 왔지요.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는 그대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해운회사 유니쉽은 용선운항, 선박대리점등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장 회장 전공분야인 해운 물류 운송업에 주력하여 오늘날까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장 회장은 기업 성과를 임직원들에게도 아낌 없이 공유하는 경영인으로 현지에서 이름이 더 높다. 실패했던 봉제공장 말고도 한창 일궈놓았던 사업체를 서슴 없이 넘겨 준 사례도 여럿 있다.
기업의 성과를 창립자 또는 대주주에게 대부분 귀납시키는 경영을 그는 원하지 않는다.
“기업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소유를 나누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 한국인은 이곳 필리핀에서 영원한 이방인이고 외국인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마찬가지이지요.”“함께 빵을 나누는 곳, 컴퍼니”

상생을 넘어 공생의 도리를 편다.


“우리는 현지사람을 존중하고 현지 나라가 잘 되도록 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투자했다고 다 내 것이라는 자세는 현지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요.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 일차 목적이지만 정말 목적은 사람을 얻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영어 Company. 장 회장은 COM+Pany(Panis) 어원을 차근차근 풀이해준다.
“Com은 함께란 뜻이고 Panis는 Pan 빵이란 말입니다. 결국 회사는 함께 일하고 함께 빵을 나누는 공동체란 뜻이지요. 회사 운영을 이러한 마음으로 운영한다면 모두가 행복할 겁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번 돈은 필리핀인들과 이 나라를 위해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영받는 이방인, 현지 토착민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사는 이방인이 되는 법에 대한 명사 특강인 셈이다.


사랑의 실천 소록유니재단

군더더기 없이 현지 토착화하는 또 하나의 버팀목은 아직 봉제공장이 망하기 전 유니쉽 창업 10년이 지난 1996년에 싹 텄기에 거목이 됐다.
“한국에 있을 때는 소록도에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이야기로만 들었어요. 성경에도 가장 많이 나오는 한센병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지요, 헌데 1992년에 부산상애마을(용감동 음성한세인정착마을)의 천개성 목사님을 태국에서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한센사역에 발을 들여놓았던 겁니다.”
따지고 보면 소록유니재단 설립에 2년 앞선 1994년에 세운 사마리아구라선교회를 설립한 것도 헌신하는 삶으로 인도하려는 신의 뜻이었는지 모른다. 
“2002년엔 한국의 소록도와 교류하면서 한국에서는 천형을 상징하는 소록이란 이름을 해외에서는 한센인들의 삶의 변화 그리고 자립성공모델의 말로 쓰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록도의 허가를 받고 소록유니재단을 설립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정착촌 마을이 세 곳으로 불어났다. 한센인 말고도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자를 위한 활동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매주 공원에서 약 500명의 노숙자들에게 노천예배를 드리고 햄버거와 의료 진료활동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에는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가만히 손꼽아 보더니 장 회장이 남긴 독백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필리핀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공식 NGO 소록유니재단도 벌써 21년이 되었네요.”
지금은 모든 관리운영을 현지인들의 조직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자신은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돈만 버는 데 열심인 회사가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쓰는 과정을 직접 체감한 직원들이 자긍심을 품고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소록유니재단은 장 회장과 필리핀의 관계를 잘 대변해주는 단체다.

‘좋은 이웃 코리안’ 슬로건

그는 필리핀에 기업이 거둔 열매를 아낌 없이 나눌 줄 아는 기업인이기에 2003-4년 필리핀한인총연합회 회장으로 교민 사회 구심점 노릇을 했다.
당시 내건 것이 ‘좋은 이웃인 한국인’이라고 한다.
“각 지역에서 ‘한국인의 품위를 지킵시다’라는 스티커를 보급하고 손수 붙이며 다녔죠. 한인회는 교민들의 친목단체가 아니고 필리핀 정부 그리고 필리핀인들에게서 한인들을 보호해주는 단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 저희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끼리는 여러 다른 통로를 통하여 모이고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 정부와 소통하고 민간 단체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은 한인회가 맡아서 앞서 나가주어야 했지요.”

“혈맹국 필리핀 사람 존중해야”

한인회장 출신으로서 그는 한-필리핀 민간 외교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한국과 필리핀은 피를 나눈 우방국입니다. 70년대에는 필리핀이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는데  한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필리핀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2000년대 들어와서 필리핀과의 교역과 지원협력을 늘려나갔죠.”
지금은 한국이 수출하는 물량이 훨씬 많은 사이가 됐다. 양쪽 국가에 현재 거주하는 국민도 거의 같은 숫자에 이른다.
“필리핀을 찾는 한국 방문객과 관광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요, 1년에 약 1209만명 정도  찾는 숫자가 늘다보니 좋지 않은 일둘도 많아져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에 해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에 있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친절히 잘 해 주는 게 한-필리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대양 항해 대신 필리핀 정착

장 회장은 서울 배재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국립해양대학교를 마친 뒤 처음엔 항해사로 나중엔 선장으로 20대에 전 세계 약 60개국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삼미해운에 들어가 싱가폴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프랑스 회사로 옮기며 마닐라로 와서 필리핀에 완전히 정착했다.
“저는 필리핀을 사랑합니다. 필리핀 사람도요. 세상 어디에 가나 위험은 다 있다고 봅니다. 미국도 필리핀도. 하지만 본인이 하기에 따른 것 같습니다. 저는 주위 한국인들에게 충고를 해 줍니다. ‘물가에 안가면 옷이 젖지 않는다고’요. 우리는 물 가에 가서 옷 젖었다고 불평합니다. 필리핀은 참으로 매력이 있는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특히 노년에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거대 시장 무한한 기회 살려야”

한국 기업인들과 자산가들에게는 필리핀의 잠재력과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리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필리핀은 현재 약 1억 2000명 인구를 지닌 대국입니다. 2045년에 2억이 넘어 세계에서 7번째 정도 큰 나라로 올라섭니다. 이혼하면 안 되고 중절수술이 허용되지 않는 카톨릭국가인데 이 큰 시장을 기업가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서 4시간 조금 더 걸리면 도착하는 직항편이 일주일에 약 180편이 있는 이웃나라이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화된 나라며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사업의 기회가 있는 나라며 은퇴 생활에도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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